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한 줄의 잉크가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워터맨(Waterman) 은 그 믿음을 140년 동안 지켜온 브랜드다.
처음 워터맨을 손에 쥔 건 몇 년 전, 파리 출장 중 갤러리 라파예트 문구 코너에서였다.
‘글을 쓰는 도구가 아니라, 글을 만드는 경험’을 원하던 내게 직원이 건넨 건 워터맨 카렝(Carène Marine Amber) 이었다. 그날 이후, 내 글쓰기 루틴은 완전히 바뀌었다.
1 브랜드의 시작: 실용에서 예술로
1883년, 한 세일즈맨이었던 루이스 에드슨 워터맨(L.E. Waterman)은
잉크 누수로 계약을 망친 사건을 계기로 세상을 바꿨다.
그의 발명 — 세계 최초의 모세관 피드 시스템(capillary feed) 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만년필의 기초가 되었다.
그 후 워터맨은 단순한 필기구가 아니라 사람의 생각을 기록하는 예술 도구로 진화했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금상을 받으며 ‘글쓰기의 품격’이라는 개념을 세상에 도입했다.
2 파리 감성의 디자인 철학
워터맨은 모든 제품을 프랑스 파리 본사 장인들의 손으로 제작한다.
그래서일까, 펜 한 자루에도 프렌치 감성이 깃들어 있다.
- 바디를 감싸는 라카(lacquer) 코팅의 깊은 광택
- 금장 트리밍의 정교한 마감
- 곡선형 캡이 손끝에서 느껴지는 균형감
나는 워터맨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 ‘도구’라기보다는 ‘악기’를 들고 있는 느낌이었다.
펜촉이 종이를 스칠 때마다 부드러운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내 생각이 살아 움직이는 리듬 같았다.

3 필기감: 부드러움 속의 강단
워터맨 카렝(Carène)은 손에 닿는 순간부터 특별하다.
무게 중심이 낮게 잡혀 있어서 손가락 끝이 자연스럽게 종이 위를 미끄러진다.
나는 보통 Lamy 블루-블랙 잉크를 사용한다.
워터맨 잉크보다 약간 묽지만, 카렝의 피드 시스템과 만나면 잉크 흐름이 놀라울 만큼 안정적이다.
필압을 거의 주지 않아도 잉크가 부드럽게 번져 나간다.
특히 중간 정도의 속도로 필기할 때, 글씨의 곡선마다 미세한 두께 변화가 생기는데 그게 참 예쁘다. 마치 활자를 직접 새기는 느낌이다.
노트를 펼칠 때마다 느껴지는 그 묵직한 존재감 덕분에
일상적인 기록조차 조금 더 ‘의식적인 글쓰기’로 바뀌었다.
4 기술과 감성의 조화
최근에는 Expert Metallic Black CT 모델도 함께 사용 중이다.
회의나 출장 시에 들고 다니기 좋은 실용적인 만년필이다.
라카 바디의 미세한 반광택과 스테인리스 클립의 조화가 세련되고, 오랜 필기에도 손에 피로가 거의 없다.
필기 후 잉크가 마를 때 특유의 반짝임이 남는다.
잉크가 완전히 스며들기 전, 그 순간적인 빛이 좋다.
종이 위에 내 생각이 아직 ‘움직이는 중’인 것 같아서다.
장시간 회의 기록이나 아이디어 노트에 사용할 때,
잉크가 손에 묻지 않고 즉각적으로 흡수되는 점이 특히 만족스러웠다.
5️⃣ 나의 워터맨 루틴
나는 원고를 시작할 때 항상 워터맨으로 첫 문장을 쓴다.
키보드로 타이핑하기 전에 펜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정제하는 시간’을 갖는다.
워터맨 펜을 사용할 때면, 글씨체가 조금 더 정중해지고, 문장의 호흡이 차분해진다.
그건 단순한 심리 효과가 아니라, 손끝의 속도가 사고의 리듬을 바꾸기 때문이다.
2023년 봄, 파리의 한 카페에서 여행 일기를 적을 때, 현지 작가가 내 펜을 보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Waterman은 프랑스인의 글쓰기 손끝을 닮았죠. 생각이 흘러가는 펜이에요.”
그 말이 어쩐지 마음에 오래 남았다.
결론
워터맨은 단순히 글을 쓰는 도구가 아니다. 생각을 다듬고, 감정을 기록하는 도구다.
그 한 줄의 잉크가 시간의 결을 따라 흐르며 쓰는 사람의 이야기를 완성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