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WATERMAN 워터맨
요즘 우리는 글쓰는 행위에대해 여러가지 도구들이 생겨났다. 내가 학교를 다닐때만 해도 연필이나 볼펜 이런것들 밖에 없었지만 IT기술의 발전이 테블릿에 필기는 하는 경우가 많아 졌다. 심지어 실제 연필이나 볼펜의 필기감이 이질적이지 않아 더놀란다.
그런데 여기서 왜 나는 수많은 필기구중에서도 조금은 불편한 만년필에대해 쓰고있는가?
아직도 많은 사람들, 정치이나 기업가, 작가 등이 중요한 자기의 사인이 필요한 곳에 만년필로 자신의 사인을 하는 행위는 뭔가 의식적이고 일이 잘 되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의 담겨있는것 같다.
(개인적인 감수성의 문제 임을 밝힙니다)
많은 만년필중에서도 워터맨에 대해 관심을 갖게된 계기는 친구로 부터 받은 선물에서 부터 시작해서 사용하는 동안 좋은 퀄리티에 감동하게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왜 워터맨인가? 정말 괜찮은 제품인가에 대해 알아보기로 합시다.
1883년 보험판매원인 우이스 에드슨 워터맨이 큰 보험계약 사인을 하는도중 잉크가 번져 계약을 망쳐 새지않는 만년필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만년필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워터맨은 당시에도 많은 만년필 제품들이 있었지만, 그런데 왜 워터맨을 만년필의 아버지라고 부른이유는 잉크가 충전된 공간(리저브)과 만년필의 닙 사이의 연결하는 피드(Feed)의 개발과 완성했기 때문이다.이 결과로 잉크의 흐름을 일정하게 조절해 만들어진 모댈아 ‘더 레귤러’ 이다
그렇게 성장한 워터맨은 1900년대 미국과 캐나다 전역에 판매를 하게되었다. 그리고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에서 상을 받으며 도약의 계기가되었다. 그러나 1901년 창립자인 루이스 에드슨 워터맨이 사망하므로 조카인 F.D WATERMAN 이 물려받았다. 이때 금과 은으로 도색한 만년필을 만들기도 하고 고객의 이니셜을 새겨주는 서비스등을 하며 사업적 수완으로 성장을 해나갔다.
그리고 1905년 만년필에 클립을 달며 주머니에 넣는 방식에서 펜을 포켓에 꽂을수있는 지금과 같은 형식이 되었다.
워터맨은 세계적인 회사로 성장하는 여러계기가 있없는데 1905년 “러시아-일본 포츠머스 조약” 1919년 1차세계대전 이후 “베르샤유조약” 에 워터맨이 사용되었다. 뿐만아니라 서방과 유럽정상, 중국의 황제도 사용하는 만년필이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대공항(1929~1939년 미국역사상 최대의 경제위기)이 시대가 도래하며 워터맨의 전성기도 끝났다. 미국 워터맨은 경영난으로 흔들리고 있었지만, 프랑스의 JIF WATERMAN은 잘 운영되고있었다.
결국 1954년 미국위 워터맨은 생산을 중단하게되고 1958년 상호도 프랑스BIC의 창립자인 마르셀 비크에게 팔게된다. 그리고 여러번의 인수를 통해 지금은 프랑스회사의 뉴웰브랜드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는 어떤물건을 사용할 때 장인정신과 헤리티지를 느낄수 있는 물건에 애정이가고 그 스토리에 감동을 받으며 나도 어떠한 순간 그것들을떠올리게 된다. 워터맨이 나에게 그런 물건이었기에 여러분게 소개해 본다.
한국공식구매처 : www.waterman.co.kr